[칼럼 - 이진희] 절제와 성찰이 요청되는 시대에 등장한 영화, <오디세이>

▲이진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영화 <오디세이>의 관객이 1,200만 명을 넘었다는 기사를 읽고, 시대의 흐름에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뒤늦게 예매창을 두드렸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략가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간의 모험담이다. 그러나 오늘의 눈으로 보면 이는 단순한 귀향 체험담이 아니다. 무절제했던 지난 삶을 통렬히 뉘우치는 성찰의 긴 여정에 가깝다.

 

성찰(省察)은 ‘살필 성’과 ‘살필 찰’이 합쳐진 말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살핀다는 뜻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결핍과 삶의 오류를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빠른 속도가 미덕이 된 이 시대에 성찰은, 과단성 있는 결단과 대립하는 비효율로 치부되기까지 한다.

 

영화 <오디세이>는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곱씹을 장면을 여럿 건넨다. 먼저 로토파고이족의 섬이다. 로토스 열매를 먹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마냥 행복해한다. 고향도, 삶의 목적도,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은 채 편안한 이 섬에 계속해서 눌러앉으려 한다. 그러나 자신을 잊은 대가로 얻은 안락함이 과연 진정한 행복일까?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게 된 섬의 여인 칼립소는 다른 선원들과 달리 마냥 행복해보이지 않은 오디세우스의 우울한 눈빛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의 깊은 속내를 알아차리고, 그를 고향으로 보내주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이미 이 섬에 익숙해진 편안함에 귀향을 거부하는 부하들을 강제로 배에 묶어서 끌어내야 했다.

 

세이렌의 노래는 오디세우스에게는 또 다른 시험이다. 그는 키르케로부터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홀려 배를 난파시키는 세이렌의 위험을 들은 이후 그 나름의 대비책을 세운다. 부하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아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못하게 하고, 자신은 돛대에 몸을 단단히 묶는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장치를 미리 마련한 것이다. 절제란 자신의 의지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는 자신을 인정하고 미리 준비하는 일임을 보여 준다.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의 베 짜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낮에는 베를 짜고 밤에는 베를 풀어 원래대로 되돌린다. ‘베를 다 짜면 구혼자를 정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행한 그녀의 행동은 남편에 대한 정절과 인내의 상징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는 결정을 유보함으로써 스스로 판단할 시간을 확보한 능동적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오디세우스를 죽은 사람으로 단정하고 탐욕을 숨긴 채 벌떼처럼 몰려든 구혼자들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판단을 검증하는 성찰의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영화에서 보여 준 마지막 10분은 관객에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다. 귀향하는 대여정의 막바지에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로 전쟁에서 이긴 뒤, 자신들이 저질렀던 엄청난 살육과 약탈을 떠올리면서, 승리에 취해 안하무인으로 방종했던 지난날을 그제서야 돌아보며 통렬히 반성한다.

 

『오디세이아』가 3천 년 가까이 살아남은 까닭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길이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누구나 반드시 걸어야 할 삶의 여정임을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오디세이>의 대서사 역시 절제와 성찰이 없는 항해가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결핍 앞에서 멈출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자신에게 던지는 정직한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혹시 내가 지금 현대판 로토스 열매를 입에 물고 있지는 않은가?’

‘파멸을 부를 줄 알면서도 현대판 세이렌의 유혹에 빠져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영화 <오디세이> (필자 이진희 제공) 



 이진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박사)

(현)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 교장

(전) 서울대학교 강사

(전) EBS 수능윤리 강사




 

작성 2026.10.08 11:01 수정 2026.10.08 11:04

RSS피드 기사제공처 : 한국공공정책신문 / 등록기자: 김유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유튜브 NEWS 더보기

리더경제 누리호 5차 발사 성공https://www.leader-economy.kr/news/473114#리...

리더경제 기후 피해와 전쟁, 빠르게 진화하는 AIhttps://www.leader-economy.kr/new...

리더경제 누리호 5차 발사,오늘 낮 12시 25분으로 확정https://www.leader-economy.k...

리더경제▶️뉴스가 놓친 당신의 생활과 질문https://www.leader-economy.kr/news/47...

리더경제 세종은 왜 백성을 위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을까요https://www.leader-economy.k...

한글과 자연이 만나 웰니스가 된다? 글로벌 여행자를 사로잡는 치유관광 기획법

머리에서 몸으로, 앎이 삶이 되는 치유관광 | 국립공주대학교 스마트의료웰니스관광대학원 이용근 교수

리더경제️ 선서는 거부했지만 설명은https://www.leader-economy.kr/news/472871...

[치유관광/인문학] 알고리즘을 끄고 오감으로 부딪히는 법: 화산려, 제로 데이터, 7:3의 법칙

\"스프링힐스 18홀 증설 반대하는 환경단체 주장… 사실일까?” 팩트체크20

리더경제 카드는 더 긁고 대출은 더 비싸졌습니다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생활안전 대책 어디까지 왔나https://www.leader-economy.kr/news/47252...

\'15년 째 표류! 스프링힐스CC 증설사업, 무엇이 진실인가?\' 시민 여러분께서...

리더경제️ 조희대 “국감 증인 답변 어렵다”https://www.leader-economy.kr/news/4...

리더경제 바쁘게 달려온 한 주, 잠시 쉬어 가십시오https://www.leader-economy.kr/ne...

리더경제트럼프가 관세인하와 알래스카 가스관 투자를 한 거래로https://www.leader-economy....

리더경제위조 상품권을 확인하러 갔던 여성은 왜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달콤한 키스도 잠시 사양.오늘은 혼자 ▶️ 리더경제 https://www.leader-econo...

리더경제 주진우 의원이 이재명 대통령을 고발했습니다https://www.leader-economy.kr/ne...

리더경제️ 부기장의 기장 공격으로 급강하https://www.leader-economy.kr/news/472...